과거의 역사문화 속에는 과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현재를 살아가는 오늘의 문화도 있는 것이며 내일을 살아나갈 미래의 문화도 함께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가 하이테크 문화라고 여기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묵은 것이 되고 묵은 것은 또 골동품이 되어 어차피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한국 과학문화라는 나무가 뻗어나기 위해선 과거의 역사과학문화란 토양의 영양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통감한 설립자는 어느날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자, 이때다. 아직도 전통과학기술사 박물관 하나 없는 황량한 이 땅에 나무를 심자. 1988년은 올림픽이 열린다. 세계인이 몰려 온다. 전통과학관을 개인이라도 만들자. 그리고 경주는 청소년들의 수학여행지가 아닌가. 청소년은 자라서 곧 어른이 되며 그들이 이 시대를 창조하는 주인공이 아닌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문헌에는 있어도 없어진 과학문화재는 얼마나 많은가. 유물의 일부만 남아 있는 과학문화재라도 복원하여 그 제작원리를 탐구하자. 바로 이것이 이 시대에 내가 할 일이다. 역사과학관을 만들자. 우선 저 유리창 안에 갇혀 있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석굴암을 역사의 현장으로 끌어내자. 모형으로라도 그 구조와 미의 원류를 낱낱이 분석하고 실험해 과학적 보존방법을 보여주어야 한다.내가 지금까지 벌어들인 재산을 모조리 팔아서라도 꼭 이룩해 보리라."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몇일의 밤잠을 설치며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준비를서두르기 시작했습니다.
2년후 올림픽은 열리고 건축된 신라역사과학관의 지하 공간에는 마침내 "석굴암 무엇이 문제인가. 모형으로 재조명 한다" 라는 주제를 붙여 학계의 논쟁점을 축소모형 8기(1/10 7기, 1/5 1기) 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실험과 관찰이라는 실험고고학의 방법을 선택한 이 전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운 충격으로 감동 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전시를 관람한 몇몇 과학사학자들은 스스로 다음 전시를 위한 주제에 동참하여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오늘의 신라역사과학관이 더욱 발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복원되어야 될 과학문화재는 너무나 많으며 전시장도 증축 확장 되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1988년 한 개인의 소유물로 출발한 신라역사과학관은 이제 우리 공동의 것이 되었으며 드디어 전국민의 관심있는 교육현장으로 자리잡은 명소가 되었습니다.